ㆍ작성자	bemolle
ㆍ작성일	2006-12-22 (금)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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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조회: 4992

황기 뽑으러...

가을에 채취하여 노두(蘆頭)와 잔뿌리를 제거하고 햇빛에 말린 것을 한약재의 황기라 하며, 강장·지한(止汗)·이뇨(利尿)·소종(消腫) 등의 효능이 있어 신체허약·피로권태·기혈허탈(氣血虛脫)·탈항(脫肛)·자궁탈·내장하수·식은땀·말초신경 등에 처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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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연락이 왔다. 별 일 없으면 황기나 한 두어 뿌리 캐러 가자고...
황기, 황기, 황기? 황기백숙, 황기죽...

나는 황기에 대해서 잘 모른다.
다만 닭으로 백숙을 할 때 황기를 넣으면 닭 특유의 냄새를 없애고 고소한 맛을 낸다. 오리백숙도 마찬가지란다. 그래서들 많이 재배해 왔지만 요즈음은 그넘의 수입인가에 뒷처져 재배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이런것들이 황기에 대한 나의 상식이다. 더군다나 이 한겨울에 황기는? 또, 땅이 얼었을 텐데 어찌 파노...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건 비밀이지만) 마지못해 털레털레 베낭을 챙겼다.

눈길 산행은 또 그런대로 재미가 있다. 토끼 발자국이라는 둥, 큰 짐승이라는 둥, 언넘이 댕겨 갔다는 둥, 여기는 희한하게 눈이 바로 녹는다는 둥, 자식 새끼 잘못 두면 저런 음지 눈밭에 누워 있어야 한다는 둥,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 샘이라는 둥, 그래서 간다는 둥둥둥...

당초의 목적과는 다르게 딴 일을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럴 줄 알았더면 동동주라도 한 병 넣었어야 하는데... 아무튼 내려오는 허기진 길에서 황기를 만났다.

눈밭의 황기는 그리 어렵지 않게 발견되었다. 전에 황기밭이었으니까. 그리고 겨울 황기의 모습은 말라깽이 대궁과 비틀어진 이파리 몇개, 동그란 열매가 씨앗을 뿌려보낸 뒤 '할 일 다했다~~~'고 입을 벌린 모습이니 찾는덴 어려움이 없다. 손괭이로 살짜기 긁어 보는데 땅은 깊게 얼지 않았다. 얼지 않은 땅은 또 '살이 좋아서' 잘 파인다.

황기는 대체로 원뿌리 하나가 수직으로 깊게 들어가고 많은 곁뿌리를 내지 않는다. 그래서 황기 수확은 사람의 힘이 아닌 장비를 들여 이루어진다. 그것을 손괭이로 파는 것인데 짧은게 한 자쯤이니 수월한 작업은 아니다. 그런데 옆에선 "잘 나오네" 하면서 캐낸 뿌리 하나를 들올린다.
'아하, 황기는 잡아당겨 뽑는 것이구나!'

다행히 노두는 도톰해서 사람의 손힘을 가할 수 있는 턱이 되어주었다. 전에, 황기를 캐려면 노두에 노끈을 감아 나뭇가지를 지렛대 삼아 천천히 들올리기를 계속하면 쏘옥, 쏘옥 하다가 쑥 나온단다. 이 때 단번에 힘을 가하면 뚝 부러지기 십상이고 약하게 강하게, 지렛대에 반복적으로 탄력을 주면서 살살 들어 올려주어야 한다는데... 뭐, 그렇게 까지 정성을 들이기엔 번거로운데다 내다 팔 것도 아니다. 발로 버텨 엉덩이를 치켜세우고는 살살 당겨보는데 어라, 설설 나오네!

두어개 까지는 나와주었고 큰 뿌리가 잘록해지는 부분까지 캘 수 있었다. 황기는 캐보지 않고서는 땅 위의 줄기 부분의 크기로 뿌리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다. 줄기의 성장이 왕성해도 캐보면 작은 것이 있고 여리게 보이는 줄기를 따라가 보면 더 큰 놈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한 녀석과의 버티기와 당기기가 시작되었다. 노두 부분의 잡히는 감촉이 벌써부터 보통 녀셕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주변을 더 파 보니 좀더 굵어지는 게, 깊이 파들어 갈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당기는 것으로 결판내기로 했다.

처음엔 꿈쩍도 않던 것이 힘을 한번 주자 주변 흙이 살짝 벌어진다. 더 파들어갈 수도 없고 힘으로 당기는데... 치켜든 엉덩이의 어느 부위에 힘이 가해지는 것이 느껴진다. 올라오는 듯도 한데 이렇게 올라 온다면 오늘 하루에 나올 수 있을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머리가 지끈지끈. 왜일까? 단번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지렛대의 탄력을 생각하면서 버티는 꼴이니 힘도 힘이려니와 이건 황기와의 끈기 싸움이고 줄다리기였다. 줄다리기 게임에 참여하지 않고 멀리서 지켜 보면 금방 어느 편이 이기겠거니 하고 감이 잡힌다. 밀리고 당기기를 몇번 하다가는 어느 한편으로 쏠리기 시작하면 와르르 무너진다. 황기와의 싸움은 바로 줄다리기지만 이놈은 만만치 않다. 이미 반질반질하게 되어버린 노두에 내 힘이 달린다.

벌러덩, 하마터면 뒤로 자빠질 뻔했다. '뚝' 소리도 귀에 들어왔다. 손에 잡힌 건 중간에 툭 끊겨버린 도톰한 황기 한 뿌리. 직경 25mm에 길이는 50cm가 넘는데도 끊긴 부분은 가늘어지지 않고 있었다. 옆에서도 거들었다. "이렇게 큰 황기는 나도 첨 봐!"  하지만 다 캐지 못하고 중간에서 끊겼으니...

내려오는 길, 끊겨나간 나머지 뿌리는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많이 많이 아까웠다. 하지만 생각이 어느 골에 이르자 단방에 아쉬움은 사라지고 천만, 천만 다행이라는 안도가 나도 몰래 나왔다.

'황기를 내 두 손으로 잡아 당기는 게 아니라 땅속에 박힌 그 황기가 내 두팔을 잡고 당겼더라면...'

???

뎃다님 왈(曰) 2006-12-23 16:25	우와! 몇년근일까요? 직경이 25mm라니...다 캐지 못해서 아깝기도 하네요. 그렇지만 캔 것도 대단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