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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점 치는 앉은뱅이꽃 - 이규태
사랑점 치는 앉은뱅이꽃
어느나라건 전통적으로 사랑점을 치는 관습이 있게 마련이다. 한데 동서가 떨어져 있길 현격한데도 사랑점에 공통으로 이용됐던 들꽃이 있다. 그것이 민들레다.
우리나라에서 산에 가 나무를 하거나 들판에서 꼴을 베던 총각이 솜털이 송송한 민들레를 보면 조심시레 꺾어서 마음속에 그리고 있는 순이가 있는 쪽을 향해 후욱 불어 날린다. 송송하던 솜털이 하나도 빠짐없이 순풍 타고 마음먹은 쪽을 향해 날아가면 둘 사이에 사랑의 길이 트였다는 증거로, 사랑이 이루어질 조짐으로 받아들였다.
만약 불러 날린 민들레 솜털이 역풍을 타고 반대쪽으로 날아들면 비련의 조짐으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애드 드 프리즈의 《상징사전(象徵事典)》에 보면 유럽의 희랍 문명권에서도 사랑점에 민들레 부는 습속이 적혀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머리에 그리고 민들레를 불어 솜털이 모두 날리면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요, 조금밖에 날리지 않으면 사랑은 커녕 전혀 생각지도 않고 있다는 조짐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민들레는 기근이들었을 때 맨 먼저 찾아 먹었던 구황식(救荒食)이었다. 뜯어다가 잎과 대를 삶아 나물로 무쳐 먹었는데 비단 구황식으로서 뿐만 아니라 여느 때도 입맛을 돋우는 기호식으로 선호됐었다.
옛날 글을 가르치는 서당을 속칭 '앉은뱅이 집'이라고도 불렀다. 민들레를 남도에서는 앉은뱅이꽃이라 불렀고, 서당의 꽃밭에는 의당 앉은뱅이꽃을 심었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또 옛글을 읽다 보면 서닿 훈장을 '포공(浦公)'으로 미화한 대목을 이따금 볼 수 있는데, 마로 민들레꽃을 포공영(浦公英)이라 부른 데서 얻은 이름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가르치는 것과 민들레와는 밀접한 함수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옛날 서당에서는 글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심성을 기르는 덕육(德育)도 했으며, 그 덕육을 포공구덕(浦公九德), 곧 민들레가 지닌 아홉 가지 습성으로 비유해 마음에 아로새겼기 때문이다.
민들레는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길가에 피어 마소와 수레바퀴에 짓밟히고 찢겨도 줒기 않고 끝내 살아나는 끈질긴 잡초다. 나쁜 환경, 나쁜 여건을 억척스레 이겨내는 인(忍)의 덕이 그 일덕(一德)이다.
민들레보다 생명력이 웃도는 강인한 잡초는 없다. 뿌리를 난도질하여 심어도 그 뿌리에 싹이 돋으며, 뿌리를 캐어 닷세고 이레고 햇볕에 바싹 말렸다 심어도 돋는, 역경을 이겨내는 강(剛)이 이덕(二德)이다.
민들레는 돋아난 이파리 수만큼 꽃대가 올라오는데, 꽃이 한꺼번에 피지 않고 반드시 한 꽃대가 피었다 지면 기다렸다 피는, 차례를 아는 꽃이다. 곧 차례를 아니 예(禮)가 있음이요, 이것이 삼덕(三德)이다.
여린 잎은 나물로 무쳐 먹고 뿌리는 김치를 담가 먹으니, 온몸을 다 바쳐 후생(厚生)으로 성인(成人)하니 용(用)이 사덕(四德)이다.
그리고 꽃에는 꿀이 많아 원근에서 벌을 많이 끌어들이니 정(情)이 오덕(五德)이다.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하얀 젖이 나니 사랑이 육덕(육덕)이요, 약재로서 머리를 검게 하여 늙은이를 젊게 하니 효(孝)가 칠덕(七德)이다.
모든 종기에 민들레 즙(汁)이 으뜸이니 그 인(仁)이 팔덕(八德)이며, 씨앗이 되어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 자수성가하니 그 용(勇)이 구덕(九德)이다.
청소년의 정신교육의 조건들을 완벽하게 갖춘 민들레요, 따라서 서당에서 민들레꽃을 심는 이유가 알 만해진다.
지금 일본에서는 아파트 단지의 한길가에 피어난 민들레꽃을 꺾는 것이 환경 파괴냐, 아니냐의 여부를 두고 논쟁이 전국적인 규모로 번져가고 있다고 한다.
대체로 웬만한 사람들은 민들레가 무슨 보호 식물이냐면서 생명력이 강한 풀이기에 잘라도 바로 돋아나므로 환경 파괴일 수 없다는 잡초론으로 우긴다.
이에 비해 민들레가 하나의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여러 사말이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공공 재산이요, 민들레를 잘라 사유화 하는 것은 환경 파괴라고 맞서는 것은 비교적 새로운 세대다.
우리나라였다면 민들레는 잡초도 아니요, 화초도 아니며, 구덕(九德)을 갖춘 덕초(德草)이기에 논쟁의 여지가 없으련만…….
다만 한낱 잡초 한 그루 자른 것 가지고 전국이 문제 삼을 만큼 자연과 환경에 민감한 그 감도가 새삼스러울 따름이다.
『한국학 에세이』 (이규태 지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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