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작성일	2007-02-06 (화)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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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기후를 이용해 살아남는 식물들

미기후를 이용해 살아남는 식물들

우리 살갗은 비타민 제조 공장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단다. 그래서 햇볕을 받으면 살갗에 있는 에르고스테롤이 비타민 D로 바뀌지. 비타민 D가 뼈를 튼튼하게 해 주는 것은 물론 전립선암까지 예방해 준다고 하니, 노인들은 햇볕을 많이 쬘수록 좋겠지?

낮이 짧은 겨울에는 빛을 받는 시간(일조시간)이 부족해서 잠에 필요한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분비가 줄어들기 쉽다고 해. 햇빛을 오래 받아야 잠을 푹 잘 수 있다는 뜻이지. 여자는 하루에 15분 이상 직사광선을 받아야 자궁암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하니, 햇볕은 한마디로 약방의 감초인 셈이야.

집 뒤에 있는 밭으로 가 보자. 밭의 두렁과 두렁 사이에는 움푹 들어간 밭고랑이 있단다. 가만가만, 조심스럽게 그 곳을 들여다보자꾸나. 두렁은 우뚝 솟아 있기에 햇볕을 잘 받지만, 고랑은 하루 종일 그늘이 지는 응달이란다. 그래서 눈이 온 다음 날 두렁 위에 있는 눈은 곧바로 녹아버리지만, 고랑 위에 있는 눈은 여간해서 녹지 않는단다. 밭이랑 하나를 두고도 두렁과 고랑의 기후가 다르다는 거야. 이처럼 아주 작은 차이가 있는 기후를 '미기후'라고 부른단다. 두렁과 고랑은 미기후의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지.

예를 하나만 더 들어 보자. 마당에 눈이 수북하게 쌓였어. 이 때 온도계를 들고 나가서 공기의 온도를 재고, 눈 속의 온도를 잰 뒤에 서로 비교해 보렴. 온도 차이가 있다면 어느 쪽 온도가 높을까? 당연히 눈 속의 온도가 높단다. 공기와 눈 속의 온도차, 이것도 미기후야. 마당에서 가랑잎 아랫부분과 흙 속의 온도를 재서 비교해 봐도 역시 온도 차이가 난단다.

그러면 기후를 결정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기후는 생물의 죽음과 삶을 결정할 정도로 중요한 것이야. 조습, 청우, 한서 등을 한 마디로 기후라고 해. 말이 너무 어렵지? 조습은 건조하거나 습한 것, 청우는 맑게 개거나 비가 오는 것, 한서는 춥거나 더운 것을 말한단다. 이 세 가지 조건은 모두 물, 햇빛, 온도, 바람이 관여하지. 그런데 여기에 꼭 하나 더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공기(산소)란다. 물론 산소가 '바람'에 포함될 수도 있단다. 사막이냐 늪이냐를 결정하는 것은 물이고, 열대냐 온대, 한대를 결정하는 것은 햇볕에 따른 온도차야. 바람이 부느냐 불지 않느냐에 따라서는 동식물의 분포가 달라지고, 흙 속이나 물 속의 경우에는 산소가 있느냐 없느냐가 생물의 중요한 생존 조건이 된단다. 그들이 사느냐 죽느냐는 모두 이 기후 조건에 달려 있지.

다시 밭으로 가 보자. 어슬렁어슬렁 걸으면서 땅바닥을 한번 유심히 들여다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던 그 곳에 여러 풀들이 몸을 넙죽 엎드리고 누워 있는 것을 볼 수 있단다. 눈에 가장 잘 띄는 것이 냉이요, 그 옆에는 달맞이꽃과 애기똥풀, 그리고 씀바귀, 고들빼기가 줄줄이 늘어서 있지. 그것도 홈이 진 밭고랑이 아닌 해를 바라보고 있는 밭두렁에 더 많이 나 있단다. 두렁은 때로는 바람막이가 되어주기도 하지. 어떻게 그 자리가 따스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참 신기하구나. 이것도 바로 미기후를 이용하고 있는 거란다.

그리고 이 식물들은 하나같이 땅바닥에 이파리를 바싹 붙이고 납작하게 달라붙어 있지.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작은 잎이 둥글고 촘촘하게 다닥다닥 열을 지어 동심원처럼 보기 좋게 배열되어 있단다. 게다가 아래의 큰 잎과 위의 작은 잎이 엇갈리게 포개져 있는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을 '로제트'라고 한단다. 우리말로는 '방석'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구나.

아무튼 냉이같은 로제트 모양의 식물은 잎사귀를 둥그스름한 꼴로 만들어 땅에 바싹 붙어 있단다. 땅의 온도(지열)를 한껏 이용하여 얼어 죽지 않겠다는 작전이지. 여름처럼 잎사귀를 땅 위에 올려놓고 있었다면 벌써 얼어 죽었을 거야. 이들의 오묘한 생존 작전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구나!

또 하나 새로운 사실이 있단다. 보통 때는 잎이 연한 녹색을 띠었는데, 겨울에는 모두가 탈색되어 붉은 갈색을 띠지. 이는 그 추위에서도 적게나마 광합성을 한다는 얘기야. 대낮에 해만 떴다 하면 이파리를 살포시 펴서 양분을 만들고, 해가 졌다 싶으면 잎을 땅바닥에 찰싹 붙여 어는 것을 막고 있지.

지금까지 추위나 건조함 등을 이겨 내고 또 피하기 위해 미기후를 이용하는 식물들을 살펴보았단다. 우리도 온도를 잘 이용하여 추운 겨울을 지혜롭게 이겨 나가자꾸나.

권오길 지음 《권오길 박사의 아름다운 생명일기》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