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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멀었다 - 이정하 -
 눈이 멀었다 어느 순간, 햇빛이 강렬히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잠시 눈이 멀게 되는 것이다. 내 사랑도 그렇게 왔다. 그대가 처음 내 눈에 들어온 순간 저만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세상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내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될 줄 까맣게 몰랐다.  - 다음 페이지 내용 - 세상의 모든 만남은 슬픔이다. 그 사람을 내내 담아 놓을 수 없기에......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지워지는 기억들이 많아. 부러 애쓰지 않아도 시간이 지날수록 가물가물해져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무덤덤해지는. 우리 인간에게 그런 망각의 기능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한 일이야. 모든 것을 다 기억하며 산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기에. 반대로, 지울 수 없는 기억도 있어. 지우려고 애를 써도 지워지지 않고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기억. 그중 하나가 바로 너와의 첫 만남이야. 너를 처음 본 그 운명적인 순간, 그 설렘과 떨림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 까. 고백하자면 그때 나는 온 세상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어. 햇빛이 갑자기 눈에 들어와 마치 내 눈이 먼 것 같은 느낌. 생생히 기억나. 너를 처음 만났던 그순간이. 나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보이는 것은 너 하나뿐이었지. 훤한 대낮이었음에도 내 눈에는 너 말고는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그리고 나는 그다음 순간 눈을 질끈 감지 않을 수가 없었는데, 그건 아마도 이후에 닥쳐올 슬픔을 미리 예감한 탓이었을 거야. 겪어 본 사람은 알 수 있을 것이야. 어떤 한순간의 일, 그 일 때문에 그 사람은 일생을 매여 살아갈 수도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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