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부채를 아시나요 

무더운 여름날, 선풍기 대신 부채를 들어보시지 않으실래요? 기계적 열풍보다 바람의 양은 적을지 모르나 신선한 느낌은 더위를 잊기에 딱 적격입니다. 요즘은 부채를 쓰는 사람을 보기 힘듭니다. 예전엔 호랑이도 부채를 들고 다녔을까요? 오늘은 호랑이 부채란 뜻을 가진 ‘범부채’란 식물의 이야기입니다.
 
 
 
<꽃과 나비>
범부채 꽃에 날개무늬 화려한 산호랑나비가 찾아왔습니다. 이처럼 꽃이 피면 벌과 나비가 모여듭니다. 벌과 나비는 언제부턴가 청춘남녀의 애틋한 사랑으로 비유되곤 하는데요, 우리 선조들은 화접도(花蝶圖) 라 하여 방에 두거나 또는 부채에 그리기도 했습니다.
 
꽃과 나비가 사랑을 할까요? 그건 아니지요. 꽃은 꽃끼리, 나비는 나비끼리 서로 사랑할 뿐이지요. 꽃은 나비를 이용해 자신의 사랑을 이루려 하고, 나비는 자신이 필요한 꿀을 얻다 보니 꽃들의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는 격이 된 것입니다. 자연의 심오한 현상을 넘어 꽃과 나비가 사랑을 나누는 것처럼 보는 인간의 상상력은 또 그래서 좋은 것 같습니다.
  
 
  
<범부채>
범부채에 대한 간략 설명입니다.
붓꽃과의 여러해살이풀. 산지와 바닷가에서 자라고 꽃은 7∼8월에 피며 노란빛을 띤 빨간색 바탕에 짙은 반점이 있고, 종자는 9∼10월에 익는데 공 모양이고 검은빛이며 윤이 납니다. 관상용으로 재배하며 뿌리줄기는 약으로 씁니다.
 
 
 
<6월 - 부채꼴로 자라나는 잎>
범부채는 자라는 잎이 부채꼴을 이루며 그 꽃의 반점이 마치 호랑이의 가죽을 닮은 데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어떤 책에는 꽃잎의 모양이 부챗살과 같아 명명되었다고 유래를 적고 있는데 아래의 사진처럼 꽃잎의 모양에서는 부채를 연상해 낼 수가 없네요. 
 
 
  
<7월(1) - 범부채의 꽃>
범부채의 꽃은 식물체의 크기에 비하여 그리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아주 화려하지도 않습니다. 제 눈엔 그저 적당한 크기에 적당한 아름다움을 지녀 보입니다. 하지만 이 식물을 몇 년간 키우며 지켜보건대 많은 매력이 숨어 있음을 봅니다.
 
 
  
<7월(2) - 시든 꽃을 끝까지 떨구지 않는다>
식물학적으로 가루받이를 위한 유인용의 생식기인 꽃은 가루받이가 끝나면 불필요한 기관이 됩니다. 그래서 곧바로 꽃잎을 떨궈 내는데 동백나무나 목련, 능소화 등은 시들지도 않은 꽃잎을 땅에 흩뿌린 모습을 보여줍니다. 접시꽃, 무궁화 등은 속내를 숨기려는 듯 그나마 돌돌 말아 떨어뜨리지요.
 
특히 동백나무는 싱싱해 보이는 꽃송이 전체를 ‘툭’하며 내던지듯 떨쳐내는데 떨이진 꽃은 그만큼 처절해 보입니다. 그런 이유로 개업, 문병 등에는 사용금지를 권하고 싶습니다.
 
한편 범부채는 꽃잎을 돌돌 말아 끝까지 가져가는데요, 자세히 보면 꽃보다 뒤지지 않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있습니다. 쥐어짜듯한 아픔(?)은 이해할 수 있겠는데 예외 없이 왜 ‘시계방향으로’ 배배 꼬일까 하는 점입니다. 숙제로 남겨드립니다.
 
 
  
<8월 - 씨앗을 익혀갑니다>
열매는 삭과(蒴果)로서 달걀을 거꾸로 세워놓은 모양이고 길이 3cm 정도이며 9∼10월에 익습니다. 줄기는 아직도 묵직한 열매를 치켜세우고 있습니다. 또르르 말렸던 차마 떨구지 못한 꽃잎은 그대로 달려 있네요.
 

 
<9월 - 범부채의 종자>
종자는 포도송이처럼 달리고 검은색으로 윤기가 납니다. 이 종자를 받아 뿌려두면 다음해에 발아가 되겠지요. 종자도 엄청 많이 달리지만 발아율도 높습니다.
  
 
  
<10월 - 목이 아파 음식을 먹지 못할 때 좋은 범부채>
범부채의 생약명은 사간(射干)이며 뿌리줄기를 약으로 씁니다. 동의보감 초부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목이 아파 음식을 먹지 못할 때 좋은 범부채
범부채[射干]는 잎이 좁고 길며 옆으로 퍼져 새의 날개를 펴놓은 모양과 같기 때문에 달리 오선(烏扇)이라고 한다. 범부채는 후비(喉痺)와 목 안이 아파 물이나 죽물을 넘기지 못하는 것을 낫게 한다. 오랜 어혈이 심비(心脾)에 있어서 기침하거나 침을 뱉거나 말을 할 때 입에서 냄새 나는 것을 낫게 하고 뭉친 담을 없애고 멍울이 진 것을 삭게 한다.
 
 
  
<12월~1월 - 겨울을 견디다>
종자는 간간이 떨어지지만 이처럼 겨울눈 속에서도 꿋꿋이 견디며 그 위풍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꽃도 떨구지 않고 종자도 쉬이 떨어뜨리지 않는 것을 보면 자신을 참 많이 사랑하는 식물이란 생각을 하면서 그를 지켜보는 이도 나를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유난히 호랑나비가 좋아하는 꽃, 자가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꽃>
범부채는 유난히 호랑나비가 좋아하는 꽃입니다. 범부채를 울타리로 가득채운 마당엔 각종의 호랑나비들이 마음껏 비상하며 범부채와 어우릅니다.
 
호랑나비는 날개가 유난히 크고 무늬가 아름다울 뿐 아니라 그래서 늘 쉬지 않고 비상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호랑나비를 찍기란 여간한 인내와 함께 행운을 기대해야 합니다.
 
위 사진의 곳곳에서 호랑나비를 찾아보세요.
꽃을 피워 호랑나비를 부르고 꽃과 열매와 종자를 이듬해까지 보듬어 가는 그 범부채처럼 자신의 소중함을 깨우쳐 자신을 많이많이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