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이 다른 말로 ‘고수’라는 단어가 여럿 있다. 여기서는 식물의 이름으로서 고수 이야기다. “아하, 그 고수, 고수풀！” 맞다. 군사설은 빼자. 길이 바쁘다. 그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작은 만족이 될 수 있겠으나 그의 모든 것을 알기에는 여가가 없다. 곧바로 고수의 세계로 빠져보자.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고도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출애굽기16:31) …… 깟은 히브리어 gad를 그대로 옮긴 것이다. …… ‘고수풀’을 말한다. Coriander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의 Koris, 즉 빈대를 뜻하고, annaon은 ‘아니스’ 씨 같은 향기가 있다는 뜻이다. 고수풀의 잎이나 어린 열매에서는 빈대 냄새가 나고, 열매가 익으면 아니스 같은 좋은 향기가 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성서의 식물』중, 최영전 저, 아카데미서적)

고수, 고수풀 ― 최영전님은 ‘만나’에서 ‘깟’으로 ‘고수풀’을 설명하고 있는데 구약에 등장하는 오랜 재배역사에 비하여 우리에게는 다소 귀설은 식물이다. 산형화목 미나리과의 한해살이풀 귀회식물로 약용 또는 식용으로 쓴다. 향채, 중국음으로는 상차이라 하고 씨앗을 호유실이라 하는데 건위, 혈압강하, 거담 효과가 있다.

고수를 처음 접하는 많은 사람들이 퉤퉤하기 일쑤인 이 고약쟁이 식물이 우리집에서는 거의 연중 자란다. 씨앗을 뿌리기도 하지만 지난해 떨어진 씨앗들이 얼마간의 터울을 두고 싹을 틔우니 이곳저곳 찾아다니면서 몇 잎씩 뜯는 재미는 여간한 코호강이 아닐 수 없다. 고수잎을 뜯으면서 먼저 향에 취하고 먹을 생각을 하니 식욕이 돋는다. 고수를 뜯은 손에서도 그 향기는 한나절은 간다. 고수는 생으로 먹는다고 하여 상추쌈처럼 입이 터져라 오물오물 움켜 먹는 것은 아니다. 가녀린 잎 두어 장을 입안에 넣고 살금살금 씹는 것인데 그 향이 입안에 감돌면 금세 으샤!하고 식욕이 솟구치는 것이다.



사람의 입은 오묘하다. 입으로 느끼는 맛은 산고감신함삽(酸신맛, 苦쓴맛, 甘단맛, 辛매운맛, 鹹짠맛, 澁떫은맛)의 여섯 가지[육미; 六味]인데 어찌 빈대냄새가 입안에 가득 차는 것일까? 육미 아닌 빈대냄새는 사실은 코가 담당한다. 그 냄새가 코를 통하여 머리의 앞통수에 전달받고 퉤퉤(역겨움)반응 또는 꼴깍(식욕)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반응은 반드시 둘 중 하나 양단간으로 나뉜다. 눈을 끔벅이며 ‘이게 무슨 맛이더라?’하는 학구적(?)인 어정쩡한 반응은 없다. 대저 무슨 맛일까?

일명 빈대나물이라 한다. 빈대를 보기 힘든 요즘 ‘노린재’ 냄새를 떠올려라 한다면 지나치게 역겨운 취각(臭覺)을 자극하는 것일까? 중요한 것은 그 고약한 듯한 냄새가 푹풍처럼 지나가고 난 뒤 그 고요를 채우는 미묘한 향취는 참 오래도록 입안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우리를 제외한 많은 나라에서는 향신료로 널리 쓰인다.



고기를 주로 먹는 사람들에겐 고기 특유의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서 향신료를 많이 사용했다. 콜롬부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마젤란의 세계일주, 바스코다가마의 인도항로 개척 등도 원래는 동방의 향신료를 구하는 일이 중요한의 목적의 하나였다고 하니 향신료로 말미암아 유럽인들의 세계 식민지화가 이루어진 것은 인류사의 일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향신료라는 말 대신에 양념이라는 말을 쓴다. 채식 위주의 우리 입맛은 강한 향보다는 그윽한 맛을 즐겼는데 식생활의 차이라 할 것이다.  ‘양념’이란 말이 약[藥]과 소금[鹽; 념]의 조합이고 보면 우리의 식문화는 전부터 격이 다른 것이었음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고기가 채소를 이기는 글로벌시대에서는 작은 － 어쩌면 큰 － 아쉬움도 없지는 않다.

고약쟁이 빈대라 했으니 고수를 먹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면 고기가 채소를 이기니 애써 챙겨 먹으라는 말인가. 먹자, 먹어보자. 맛이고 이기고 지고를 떠나 남들은 그렇게 광적으로 먹어대는데 우리가 못먹을 이유가 없지 않는가. 고수를 먹으면 우리 몸의 여기저기 많이많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제부터라도 고수밥상에 둘러 앉자.


ⓒ경향닷컴, 2010.11.09 [조남준의 밥은 먹고 댕기냐]고수풀 한 단 먹어보니

고수의 어린 잎이나 줄기, 덜익은 씨앗는 역하긴 하다. 그러나 여문 씨앗이나 그 때의 잎, 줄기는 레몬맛의 향이 더해지면서 톡 쏘는 매운맛과 함께 풍미를 더한다. 호유실[씨앗]을 먹으면 늙지도 않아 오래 산다고 했고 히포크라테스도 뱃속을 편히 한다며 극찬했다. 입냄새를 제거하고 향기롭게 하며 최음효과가 있는 미약(媚藥; 비아그라 같은 약)이다. 아라비안나이트에서도 사랑의 묘약으로 묘사된다. 그 밖에도 알려진 약성은 헤아리기 힘들다.

고수는 어느새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향신료의 하나이며 향신료 중에서도 가장 달콤하고 향기로운 것으로 분류됐다. 멕시코, 페루, 남미, 인도, 동남아, 아랍, 일본까지 생선이나 고기요리의 필수 첨가제로 후추보다 널리 사용된다. 베트남의 쌀국수, 중국에서는 김치나 장아찌까지 활용되고 있는지도 오래다.

어렸을 적 고수는 절간의 스님들이 즐겨 먹는다고 들었다. 고약쟁이 식물로 스님들이 자제해야 할 고약한 성미[性微(?)]를 죽이는 효과가 있어서란다. 알고 보니 정반대다. 아무튼 고수와 관련하여 우리 속담 중 ‘중이 [고기]맛을 알면 절간에 [빈대]도 안 남는다’는 말이 있다. 원래는 '스님이 [고소]맛을 알면 절간에 [빈 대]도 안 남아 난다'였단다. [고기]와 [고소], [빈대]와 [빈 대]는 과연 어떤 의미일까?

속담에서 [고기]란 돼지고기, 쇠고기 따위의 고기가 아니라 바로 [고소]라는 나물 이름이 와전이 된 것. [고소]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거치면서 [고소]가 어느 순간에 [고기]로 바뀌게 된 것이다. [빈대]와 [빈 대]를 구별하면 그 의미는 또록해진다.

[빈대]는 사람이나 짐승에 붙어서 피를 빨아 먹는 [빈대]가 아니라 고소의 줄기가 자라면서 마치 갈대의 속처럼 비어 [빈 대]가 되는데 고소의 맛에 한번 반하게 되면 속이 텅 빈 줄기(빈 대)까지 온통 다 먹어버려서 [빈 대]까지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는 말이었다. 결국 그 질기디질긴 [빈 대] 마저도 남아나지 않는다라는 말이 [빈대]로 이해되면서 [고소]는 [고기]로 와전 된 것이다. 고소는 곧 고수이다.

무식의 소치이었겠지만 언어학은 또 사회적 산물이지 않는가. 그 바른 이해를 갖는 것도 또 하나의 식견이리니.

고수는 코리안더(Coriander)라고도 하는데 한국학의 한 학자는 학명 Coriandrum에 지목하고 ‘고려가 유라시아를 근거로 한 제국이었다면 결코 지나칠 수 없는 학명이다’라고 조심스런 주장을 편다. 세종지리지에는 경상도에서 재배되었다고 나온단다. 어느 학자는 월드음료의 두목인 코카콜라의 원료로도 쓰인다는데 정작 코카콜라회사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고.

결국 고수는 향신료계의 고수(高手)에서 식품계까지 진정한 ‘고수’의 길을 가고 있는 식물체로 봐도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