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하는 새, 생강나무
 
 
햇살 다사한 산 언덕에서 우리는 소리의 거리를 두고 앉아 있었어. 조금 더 가까워도 되는데 말야. 서로 이야기하는 소리는 들을 수 있으니 그것이 소리의 거리인데 우리는 약속도 없으면서 항상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 그래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가까이 오라 하지도 못했던 거지.

그 날 문득 어디선가 알싸한 향기가 새털처럼 코끝에 와 닿았어. 나는 그 향기나는 꽃을 꺾어 네게로 다가갔지. 꽃보다 향기보다 네게로 다가갈 수 있는 핑계가 생겨 그렇게 좋았던 거야. 넌 그 꽃가지를 손에 쥐고 바라보며 찬찬히 고개를 돌리기도 하면서 내내 미소 지었어. 한참 뒤 너는 시작도 끝도 없는 말을 건넸지. 취한다고. 나는 물론 벌써 취해있었지. 꽃보다 아름다운 너의 미소에. 그런데 다음 날 너는 새가 되어 날아가 버렸어.

나는 참 철이 없었지. 모르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저지른 거지. 우리는 각기 다른 것에 취했던 것인데 너는 생강나무의 향에 취했고 나는 세상에서 더는 볼 수 없게된 가장 아름답고 청순한 미소에 취한 것이었어. 나는 몰랐던 거야. 생강나무의 향은 누구에게나 선물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나는 여지없이 이맘 때쯤을 기다려 사람들에게 이야기 하게 되었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지 말아야 할 꽃, 생강나무의 꽃이라고. 생강나무의 향기를 맡은 사랑은 반항하는 새가 되거든.


 
▲ 사랑하는 사람에겐 생강나무를 선물하지 말라. 그 그윽한 향에 취하면 반항하는 새가 되어 날아가 버린다.


생강나무, 생강나무, 생강나무 …… 생강나무는 지역에 따라 동백나무라 부르는 데가 많고 아귀나무, 동박나무라고도 부르지. 중부 이북, 특히 강원도에서는 동백나무라 부르는데, 남부지방 여인네들이 붉은 빛 동백나무의 기름으로 머리를 예쁘게 손질 할 때 강원의 촌녀들은 머릿기름으로 이 생강나무의 기름을 대용함으로써 이름조차 동백나무로 부르게 된 거 거든.

나는 소리의 거리에서 들었던 너의 이야기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 정선아라리에 '뱃사공아 배좀 건네주오, 싸릿골 검은 동백이 다 떨어진다' 하였고,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에서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에서의 동백꽃은 곧 생강나무를 말한다고 이야기 했지. 생각해 보면 네겐 진짜 동백나무 꽃을 꺾어줘야 했던 것을. 

 
 
▲ 싸릿골 '검은' 동백은 바로 이것

 
원래는 잎이나 어린 가지를 꺾어 비벼보면 생강 냄새가 나고, 생강이 귀하던 시절 잎을 말려 가루내어 생강 대신 사용한데서 붙여진 이름이야. 너는 아리라만 꽃말이 '헛됨'이란 것, 그 때는 내 몰랐었어. 내가 '저지른' 일과 꽃말 '헛됨'에 어떤 연관이 있었던 것일까.

한국 원산의 암수딴그루이나 꽃은 비슷하게 피어서 자세히 보지 않고는 구별이 쉽잖지. 생강나무, 산수유와 비슷하다고 했던 너는 이제는 확연히 구별하겠지. 멀리서 보아 꽃이 산수유보다 먼저 핀다, 키가 작다, 노란 꽃들이 점점이 피어 확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언뜻 지나칠 수 있고 조금 지나면 꽃은 초록빛이 돈다. 그것으로 구별하는 덴 도움이 될거야. 가까이 보면 꽃잎은 5~6장(산수유는 4장)이며 꽃받침 때문에 산수유보다 덜깔끔해 보이고 줄기는 너덜너덜하지 않고 깔끔하지만 반점도 보인다, 잎은 하트풍선 모양이 연상되면 바로 그것이 생강나무야. 
 
 
 
▲ 생강나무의 잎, 하트인가 공룡 발바닥인가

 
나무에 뭔 의사가 필요할까만 나무의사라고 불리우는 우종영의 「나는 나무처럼 살고싶다」란 책에는 생강나무를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나무>라고 했어. '산에 다니다 보면 나를 웃게 만드는 놈 … 우선 나뭇잎 모양새가 그렇다. 전체적인 모양새는 오징어 몸통같은데 거기에 잎 끝이 리본처럼 양갈래로 갈라져있다 … 어디 그뿐일까 새순이 나올때 마다 가지가 비뚤비뚤 제멋대로다. 어떻게 보면 꼭 춤을 추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술취한 사람 걸음새 같기도 하다. … 딴에는 저도 꽃이라고 초봄부터 빨리 꽃잎을 열리고 터질 것 처럼 바람을 먹고 있는데 그 모습이 꼭 심술 가득한 어린애 볼 같다'고.

참 예리한 표현인데도 내게는 '웃음'까지는 안 나와. 그런데 생강나무의 꽃향기를 이야기 하지 않음은 왜일까. 몰라서는 아닐 게고 숨겨둔 뭔가가 분명 있을 거야.

 
 
▲ 가지는 비뚤비뚤 제멋대로
 
 
 
▲ 심술 가득한 어린애 볼일까?
 
 
삼찬풍, 황매목이란 생약명을 참고로 하여 인터넷을 뒤져보되 활혈(活血)하고 근육과 힘줄을 풀며 어혈을 없애주고[타박상 효능] 산후의 부기를 가라앉히는 효능은 기억해 둠도 좋잖겠어? 요즈음엔 추출물의 활용으로 노화 주름 억제, 알레르기성 염증반응 억제, 항산화 활성과 미백효과가 있음이 밝혀지고 있으니 간단한 생화 꽃차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아.

꽃차는, 끓여 약간 식힌 물에 갓따온 꽃을 (물에 씻지 말고) 1잔 기준 2~3개를 넣어 2분 정도 우린 후 찻잔에 붓고 그 안에 생꽃 두 어개를 띄우면 되지. 꽃은 향이 강한민큼 휘발성도 강해서 3~4일 후면 거의 없어지므로 그 향에 오래도록 취하고 싶다면 술을 담그는 방법도 있지.


 
▲ 술을 담그면 향을 오래도록 만끽할 수 있다
 
 
생강나무 때문에 마음 속 어혈(瘀血)을 품고 살면서 이처럼 차분히 생강나무를 이야기 하는 여유는 어디에서 생긴 거 겠어. 세월, 그리고 파란 하늘, 네게나 내게나 늘 푸른 하늘！ 너 어디에 있던 함께 숨쉬고 있을 것임을 믿기에 이 글을 쓰는 거야. 지난 것은 모두 아름답고 생은 또 진행형이니 나의 되새김질을 나무라지는 않겠지.

다시 너를 만난다면 난 또 생강나무 꽃을 꺾어 줄래.
이제는 말할 수 있는 '사랑', 여전하니까.
 
 
     
 
 

cho님 왈(曰)

2011-04-18 23:48

cho님 왈(曰)

2011-04-25 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