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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발 얼음골
 2009년 춘분 다음날인 3월 21일 보발리 어귀의 풍경입니다. 오며가며 저 얼음이 녹아야만 바야흐로 봄이라고 느낀 골, 혼자만의 생각으로 보발 얼음골로 명명한 곳입니다.  졸졸졸도 아니고 콸콸도 아니면서 콧노래 흥얼흥얼 아무도 몰래 좌로 우로 즐거이 포크스탭을 밟아가는 열 두어살배기 긴머리 여자 아이처럼 맑은 물들이 이쁘고 사랑스럽게 흘러가는 곳, 달뿌리풀인지 물억샌지로 가득한 그 곳의 뒷편이 보발 얼음골입니다.  여기서 잠깐 갈대, 억새, 물억새, 달뿌리풀…… 이 녀석들은 제게 있어서 특이한 동질감을 불러 일으키는 친구들이랍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갈대밭에 억새밭에, 아니면 억샌지 갈댄지 알 필요도 없이 그 밭에 누워보십시오. 하늘에 투영되는 녀석들의 흔들림, 그리고 묘한 고적감이 섞이면서 묵직하면서도 강하게 때려대는 비트를 느끼니…… 묘한 일이지요. 거기에 또 하나 녀석들은 계절의 반템포 정도를 늦게 갑니다. 봄이 익어갈 무렵에야 비로소 새순이 돋고 이윽고 겨울의 중간에서라야 싸한 바람을 돌려줍니다. 결코 빠르지 않게, 아니 반박자 느리면서 나름대로 한살이를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 늘 뒤쳐져가는 제 모습과 어이 그리 닮았나 싶어 하냥 맘에들어 하는 친구들이랍니다.  아무튼 그 얼음골을 찾아 올라가는 이유는 뉜가를 만나기 위해서입니다. 기왕지사 귀하신 분을 만났으면 하는 기대로 가파른 골을 가벼이가벼이 올라가봅니다. 살아 백년 죽어 십년 됐음직한 고사목 어르신도 보이고…… 뭔가가 있을성 싶습니다. 일테면 복과 수를 가져다 주는 풀이라던가 바람만 불면 흔들리고 싶어 견디질 못하는 꽃이라던가 말입니다.   보발 얼음골의 봄은 아직 이른듯합니다. 상록 고사리와 일엽초, 이 지역에 특히 많은 초오속 식물들이 나도냉이 미나리냉이와 함께 간간이 푸른 빛을 띕니다.  참 메마른 땅이군요. 하지만 생명은 늘 살아 있는 법. 돌이 바로 생명의 근원임을 알기까지에 걸린 건 시간이 아니고 지역이었습니다. 보발리엔 참 돌이 많습니다. 돌천지라 함이 더 맞는 말일 것입니다. 그 돌에 생명이 있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돌이 많은 지역엔 가뭄이 없다더군요, 지내보니 그 말이 맞고요. 돌과 물의 관계는 이른바 연리지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 돌 틈에 과연 무엇들이 살아가는 것일까요?  키가 한 길 넘게 큰 줄기에 달려 있는 마른 꽃이 눈에 들옵니다. 줄기의 마디 사이가 제법 긴 것으로 봐서 잎 또한 큼지막 했을텐데 마른 잎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꽃은 풍성하게 많이 달렸을 것입니다. 무엇일까요?   돌틈을 헤집어 보니 짧고 단단한 덩이뿌리에 억센 수염뿌리를 달고 있습니다. 새순은 하나입니다. 녀석의 이름을 알고 꽃을 보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거니와 그래서 가까이 두기로 하고 세 뿌리를 더 캤습니다.   제법 흔하게 눈에 띄는 엄나무 잎과 더덕의 마른 순입니다. 지난 겨울에 눈이 많지 않아서 혹시나 하고 마른 더덕 줄기의 근원을 찾아가는데 아니나 다를까, 도망가고 없습니다. 겨울 더덕 캐는 일은 참 쉬우면서 재미있습니다. 지난 2월 초, 남녘에 사는 동생네가 생물을 이것저것 가지고 왔었지만 여기서는 마땅히 내놓을 게 없는지라 해물로 배를 채운 다음날 옆산으로 데려갔습니다. 해물은 먹었고 닭은 닭집안에 있으니 땅에 있는 것만 찾으면 육해공을 다 섭렵하겠다 싶어서 입니다. "이거 봐, 이게 더덕이야. 줄기는 가늘고 흰빛이 돌며 손으로 잡아보면 힘없이 눌리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오른돌이란 거야! 왼돌이는 사정없이 지나쳐!" 나는 더덕의 줄기 찾는 법을 알려주면서 또 하나의 비법(?)을 전수했습니다. "가만…… 더덕을 발견했다고 해서 그냥 덤비는 게 아니야. 더덕의 뿌리는 줄기에서 가까이 있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가 않아. 그래서 살금살금 다가간 후 손으로 조심조심 낙엽을 치워가며 줄기를 따라가야만 해. 만일에 가다가 놓치면 그 또한 사정없이 포기!" 경험에 의하면 이렇습니다. 줄기를 찾아가다 땅으로 박힌 그곳을 살살 캐보면 뇌두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중간에 끊어지거나 해서 잃어버리면 그 언저리를 다 파 봐도 더덕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더덕이 도망갔다 말하고 내가 주인이 아니려니 생각하면서 포기해야 합니다. 거짓말 같지만 정말정말 사실입니다. 이야기가 또 중간으로 샜지만 동생네는 더덕 파기에 재미를 붙인 게 확실합니다. 처음엔 졸졸 따라다녔는데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습니다. 나보다 한참 후에야 내려온 동생네의 가방에서는 자잘한 더덕뿌리 10여 개, 그리고 족히 30년을 넘겼음직한 손으로 간신히 움켜잡히는 대물 하나가 나왔습니다. 자잘하다고 얏볼 것은 또 아닙니다. 6~7년 이상 근(根)이니까요. "형님 말이 정말 맞네요! 이것 보다 훨씬 큰 놈었어요. 대가 볼펜심보다 두꺼웠고 꽃도 많이 달리고 내 키보다 두배까까이 되게 올라간 놈이었어요. 아이고 아까워……" 근처 사방 2m 넘게 30~40cm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팠는데 도망가고 없더라며 뒤로 벌렁 드러눕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그래도 해남 더덕은 다 내 더덕이다!"  이건 또 뭐야? 곰이 땅 속으로 들어가다 실패하여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입니다, 하하하.  뭔가 있을 성 싶은 보발 얼음골. 알수 없는 둥근뿌리 한 쪽과 이름 모르는 풀 네 포기를 가져왔지만 이런저런 상념으로 그럭저럭 만족해 하며 개울을 건넜습니다. 또다른 목표물, 다슬기를 점찍어 두면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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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아님 왈(曰)
2009-03-23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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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한 길 넘게 큰 줄기에 달려 있는 마른 꽃...' [한 길 넘게..]란??? 궁금해요~(-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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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님 왈(曰)
2009-03-2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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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명사, 의존명사 발음〔길ː〕 ====================================== [명사][의존명사]｛ 고유어 수 뒤에 쓰여｝ 1 길이의 단위. 한 길은 여덟 자 또는 열 자로 약 2.4미터 또는 3미터에 해당한다. 2 길이의 단위. 한 길은 사람의 키 정도의 길이이다. ＊트럭에 실린 통나무는 굵기는 한 아름이 넘고 길이는 열 길이 넘었다. ====================================== '키가 한 길 넘게 큰 줄기에'... 가만 생각하니 '한 길 넘게 자란 줄기에'로 썼어야 했나 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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