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우총(義牛塚)
 
농부 김기년(金起年)은 산기슭에서 소와 함께 밭을 갈고 있었는데 이 때 산 속에서 호랑이가 뛰어나와 소에게 덤벼들었습니다. 김기년은 쟁기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호랑이를 치려 했고 그러자 호랑이는 소를 버리고 김기년에게 덤벼듭니다. 이에 소는 자기 주인을 막아서며 호랑이의 허리를 뿔로 마구 받았습니다. 결국 호랑이는 피를 흘리며 쫓겨가다가 거꾸러졌습니다. 농부는 기운을 차리고 다리를 절며 소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으나 그는 자리에 누워 일어서지 못했고 20일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세상을 떠나면서 그는 유언을 했습니다.

“내 죽은 후에 소를 팔지 말라. 소가 늙어 죽더라도 그 고기를 먹지 말고 내 무덤 곁에 묻어 다오.”

농부 김기년이 세상을 떠나자 소는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여물도 먹지 않았습니다. 사흘 후에 소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족들은 김기년의 유언대로 소를 그의 무덤 옆에 묻어주었습니다.
 
1630년(조선 인조 8년) 선산부(지금의 경북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에서 있었던 일이고  비석은 선산부사 조찬한이 세웠으며 1685년(숙종 11년) 화공이 8폭짜리 의우도를 남겼습니다. 1993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정비되어 그 행적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 무덤이 의우총(義牛塚)인데 경북 구미시 산동면 인덕리 104-1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 개봉되어 30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은 영화 ‘워낭소리’. 평균수명 15년이라는 소가 40년동안 최노인과 함께 한 다큐맨터리입니다. 소가 죽자 장사지낸 후 할머니가 “소 죽고 없어 서운하오”라고 묻자 할아버지는 “소나 사람이나 똑같지 뭐”라고 대답합니다.
 
일 부리는 소가 아닌 싸움소로 유명한 어느 지역에서는 특별주문 관까지 만들고 행정관서의 고위직까지 참여하는 소 장례식이 치뤄지고 또 어디에서는 꽃상여까지 동원되었다는 이야기도 접합니다. 지방화 시대의 산물이겠지만 소에 대한 주인의 정은 다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소, 무엇인가
소 귀에 경 읽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 소와 관련된 속담들이 많습니다. 그 소는 우리에개 무엇일까요? 힘든 농사일을 같이 하고 집안의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동반자일까요, 우유와 고기를 제공하고 가죽을 남기는 소모품적인 존재일까요? 
 
양자택일의 질문은 아닙니다. 전자의 전통적인 가치와 후자의 실용적 가치의 변화도 문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외출하고 돌아오신 아버님께서 외양간부터 둘러보신다는 이야기, 대학 등록금 이야기, 딸의 혼수 이야기. 케케묵은 우골탑 이야기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며 우유도 덜마시고 먹는 고기도 줄이고 하는 금욕적 생활을 하자고 부르짖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세계의 두발굽짐승들아, 참 미안하다. 여기 동아시아 끝 반도 남쪽에는 물경, 백만마리의 두발굽 짐승들이 집단학살되었단다. 면목이 없다. 이곳 극동으로는 풀 뜯으러 오지 마시라. 이곳에 오면 뼈도 못추리고 생매장되기 십상이란다. 여기는 사람살기도 무섭고 험한 세상이 되었는데 순한 너희 두발굽 짐승들은 오죽하겠나. 아, 참 미안하다. 맑은 영혼, 초식동물의 넋이여.
ⓒ 김봉준 / 화가
행여 모르고 동쪽 끝나라 풀밭이 좋다고 여길 향해서 오려고 하거든 목동들아 말려다오. 라마, 낙타, 야크, 당나귀, 염소, 양, 소, 순록, 사슴, 노루, 고라니, 인팔라, 누우, 멧돼지, 돼지..... . 두발굽 짐승들은 다들 조심하라.
 
 
 
조상의 지혜로, 감사의 마음으로 소를 대하자
우리의 조상들은 정월의 첫 소날(丑日)에 쇠죽을 쑬 때 사람 먹는  싸라기, 콩나물 등을 많이 넣어주었고, 그 날만은 도마질을 하지 않기, 연자방아도 돌리지 않기, 곡식을 집 밖으로 퍼내지 않기를 지켰다고 합니다. 곡식을 퍼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소가 일해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고, 연자방아를 돌리지 않는 것은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기 위해서이고, 도마질을 하지 않는 것은 쇠고기를 먹지 않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소고기를 먹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천연의 풀을 뜯게하고 뜨끈히 여물을 쒀주는 만큼 소에 공을 들여 카우고 그 고기를 먹은 것입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요즘 식당에 들러 소고기를 먹고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뭐라고 할까요?
"몬 소리래?!!!  저 사람... #&&%@_@@;; 일케 된 거 아냐?"
 
 
늙은 소가 이렇게 말합니다.
《동양인들은 소의 고기도 좋아하지만 특히 한국인들은 그에 못지않게 소의 뼈를 푹 고아 보약처럼 먹습니다. 그러나 서양인들은 뼈를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곰탕액기스를 만들어 수출도 하고 있지만  고기도 먹지 않는 소에게 그 뼈를 가루내어 먹임으로 해서 생겨난 병이 광우병입니다. 광우병이 잠잠해진 듯하니 구제역이 또 이 나라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습니다. 아래의 글은 '늙은 소 한 마리의 호소'란 제하로 어느 일간지에 실린 글입니다. 소가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지, 우리가 먹는 소고기는 과연 무슨 맛을 내고 있는지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  
 
'늙은 소 한 마리의 호소' 
만약에 말이다. 그 옛날, 1855년에 프랭클린 피어스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땅을 팔라는 제안을 받고 깜짝 놀란 스퀘미시족의 시애틀 북미원주민 추장이 그랬던 것처럼 구제역으로 살육당하는 소·돼지를 대표해서 1970년대를 살았던 늙은 소 한 마리가 연설을 한다면 오늘의 구제역 사태를 두고 뭐라 한탄할까?
 
전에 우리는 들판에서 풀을 뜯고 살았습니다. 논에서 쟁기를 끌었고 무거운 등짐을 장터로 옮겼습니다. 진실된 노동 끝에 한 통의 여물을 받았고, 짚 몇 단으로 일용할 양식을 삼아 고단한 하루를 넘겼습니다. 일 년에 몇 번 제사상이나 명절상에 귀한 음식으로 오르긴 했지만, 한 번도 식탐의 재료가 되어 사시사철 고깃집에 걸려 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달포 사이에 소,돼지가 100만 마리가 죽임을 당해 언 땅에 파묻혔습니다. 일부는 생매장 되기도 합니다. 날이면 날마다 소주에 곁들여 우리를 뜯어 먹던 이들이 포클레인 삽날로 우리를 짓뭉개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재앙을 왜 죄 없는 우리 소·돼지에게 뒤집어씌우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좁은 쇠창살 속에 가두어놓고 평생을 사료만 먹이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90% 이상을 외국에서 사온 사료를 먹이면서 눈앞에 펼쳐진 7월의 무성한 풀밭에는 제초제를 뿌려대고 우리는 단 한 입도 풀을 뜯지 못하게 한 게 누구입니까.
 
평생토록 단 한번도 짝짓기를 하지 못하게 하고는 강제 인공수정으로 새끼만 빼내 가는 짓을 누가 했습니까. 구제역이 왜 번지는지 정녕 모르고 하는 짓들입니까. 대량살육과 생매장으로 과연 구제역을 막을 수 있다고 믿기나 하는지요? 예방 백신만 확보하면 이런 사태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갖고나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동차에 기름 넣듯이 지금의 배합사료는 쇠고기 만드는 공장에 넣는 공업용 원료입니다. 우리는 원래 되새김 동물입니다. 위가 네 개인 우리는 되새김질을 해야 정상적인 순환작용, 소화작용을 합니다. 대부분 유전자조작(GMO) 옥수수를 갈아 만든 이따위 배합사료는 단백질 덩어리와 다름없습니다. 1:1로 균형을 이뤄야 할 오메가6 지방산이 오메가3보다 무려 66배나 많은 옥수수는 되새김질은커녕 목구멍을 넘기면서 흡수되어 버립니다. 우리의 몸은 망가지고 살만 찝니다.
 
막사 구석에 어지럽게 쌓여 있는 항생제들은 우리 몸뚱이를 지탱하는 의족이자 의수입니다. 우리들에게 먹이는 항생제 량은 호주의 37배나 되고 미국의 근 3배나 됩니다. 우리는 늘 약물중독 상태입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습니까. 한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를 이렇게 취급해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 한 마리가 구제역에 걸리면 반경 얼마 안에는 전부 몰살당해야 하는 이 비참을 누가 조성했습니까. 자식같이 키웠는데 하루아침에 살처분당했다고 통곡하는 축산농가에도 우리는 할 말이 있습니다. 정녕 자식을 이렇게 키우는지 묻고 싶습니다. 영양제와 항생제로 자식을 키우는지 말입니다. 좁은 우리에 가두어 놓고 경제성이 가장 좋은 출하시기를 자로 재듯이 가늠 해 가며 되팔아서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이 최대의 관심사 아니었는지, 우리를 자본재로 여기며 자본회전 속도에 관심을 더 두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우리가 축사에서 나오는 순간 바로 도살장으로 끌려가 컨베이어벨트 쇠갈고리에 걸려 빙글빙글 돌면서 바로 온몸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것을 그들은 알 겁니다. 때로는 목숨이 다 끊어지지 않은 채로 머리가 잘리고 사지가 조각납니다. 이런데도 자식처럼 키운다는 말은 우리가 듣기에 거북합니다. 인간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못해 원혼이라도 살아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좁은 이 땅에 소만 340만 마리나 됩니다. 갓난애부터 노인병원 와상환자까지 다 합쳐서 14명당 한 마리입니다. 돼지는 1000만 마리나 됩니다. 세 끼 밥 먹고 살자고 이런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돈을 향한 맹목적인 탐욕과 싸구려 고기로 식욕을 부추기는 이런 짓을 해야 합니까. 이러고도 만물의 영장이라고 내 세우는 게 가당치나 하단 말인가요?
 
소 돼지를 파묻는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진정 파묻어야 할 것은 공장식 축산이며 돈벌이 목적의 산업형 축산입니다. 시급히 생매장해야 할 것은 과도한 육식문화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의 건강에 보탬이 되고 싶지 건강을 망치는 원흉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진정 한 식구처럼 살고 싶은 것은 우리들입니다. '축산물'이 아니라 '가축'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유제류의 원혼을 위로하는 초혼제를 지내고 속죄하기를 호소합니다. 참된 속죄를 통해 스스로를 구원하시기를 간곡히 당부드립니다. 마지막 한 마리의 소가 구제역으로 쓰러지기 전에. 마지막 한 마리 돼지가 파묻히기 전에.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전희식 / 농부 (전국귀농운동본부 공동대표)

 
 
소 - 김기택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2005년> 

 

참고 : 강원일보, 프레시안뉴스, 네이버 카페 氣感風水 硏究所 등 다수

cho님 왈(曰)

2011-01-13 1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