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과 PC, 그리고 잡스
 
맥과 PC, 조금은 생소한 말일까? 디자인 업계에서 밤잠을 놓친 사람들은 항용 입에 달고 해온 말이다. 매킨토시와 PC. 즉 매킨토시는 Apple사의 컴터이고 PC는 IBM사의 컴터인데 이 둘을 구분하여 맥과 PC로 불렀던 것이다.

여기서 잠깐, PC가 Personal Computer(개인용 컴퓨터)란 의미다. 애플사와 아이비엠사 모두 개인용 컴터를 출시한 것. 두 회사 제품이 사실상 PC이다. 같은 PC인데 사용자들은 왜 맥과 PC로 구분하여 불렀을까?

애플사는 브랜드명을 매킨토시(MacIntosh)라 했고 아이비엠사는 브랜드명을 따로 붙이지 않았다. 브랜드명을 가졌다는 가졌다는 것은 또 다른 브랜드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매킨토시 이외의 브랜드다. 즉 애플사는 개인용 이전에 기업용으로 컴퓨터를 제작했던 것이다. 어디였을까? 방송국, 신문사, 출판사 등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은 이미 애플사의 컴퓨터를 도입하고 있었다.

바야흐로 PC가 상점에 등장했다. IBM사가 DOS ㅡ (하드디스크는 없고) 디스켓으로 오퍼레이팅하는 스시템으로 개인용 컴터를 세상에 내 놓은 것이다. 대우의 IQ계열 초록색 모니터 컴터 등이 그것이다. 한글은 도깨비니 청계천이니 하는 보드를 따로 끼워 구현했다. 이 때부터 컴퓨터를 방에 모셨는데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페르시아 왕자」라는 게임. 이후 워드프로세서로 「하나」워드가 나오고  「아래아한글」이 나오고 하드디스크가 달리면서 스프래드시티인 「Lotus」가 나오고 했지만.

당시 나는 현장과 관련된 부서에 파견중이라 너른 사무실 덕에 회사에 내 컴터를 가져다 놓을 수 있었다. 본체, 모니터, 프린터 세트는 책상에는 올릴 수 없고 너른 탁자를 필요로 했는데 회의실이 적격이다. 볼펜과 자들은 밀쳐두면서 한단어 치고 모니터 한번 쳐다보고 그렇게 치고 보고를 거듭한다. 회의실에 틀어박혀 화장실만 오갔는데도 기안용지 한 장을 그리는데 이틀이 소요됐다. 상관은 처음엔 신기한듯 보고 갔으나 급한 문서가 결재에 올라오지 않으니 성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거 집어치우고 볼펜으로 빨리 하라는 것이다. 당시에는 누런 16절지에 인쇄된 기안용지를 사용해 문서를 만들곤 했는데 그 모양과 똑같이 그려야 하니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몇날 뒤 드디어 결재를 올렸다. 불만스런 표정으로 스윽 내 얼굴을 쳐다본다. 하얀 종이에 책처럼 인쇄된 기안은 그가 처음 보는 컴퓨터 출력물이다. 내용을 보는 것 같지 않다. 한참을 바라본 그는 도장을 꾹 눌러 찍어줬다. 그 날이 볼펜 문서 종료일이다. 1988년 올림픽 하고도 여름이 시들어갈 무렵. 내가 만든 문서는 문서철에서도 하얀색으로 드러났다.

그러던 중 어느날 벌레먹은 사과를 로고로 한 매킨토시가 등장했다. IBM계열의 5배 이상 되는 가격대다. 용기를 내어(감히 살 엄두를 못 냈으므로) 대리점을 드낙거리기 시작했다. 눈으로만 보다가 만지기 '허용'을 받고 그렇게. 디스켓 없이 켜면 나오는 컴터다. 하얀 화면에 총천연색의 그림이 있고 키보드 옆엔 줄달린 노리개가 있어 그것으로 그림들을 누를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구나！한없는 감탄사를 보냈다. 집에 와서 보니 IBM은 판때기 사과상자였다. 딱히 필요하지 않았으면서도 《매킨토시+할부》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국내 최초로 50개의 외장 시디롬이 수입되었는데 한달치의 월급과 바꿔치기 했다.


맥과 PC의 동침은 동상이몽?

그 사이 상관을 따라 일하는 부서도 바뀌었다(그는 퇴직할 때까지 몇몇 부서 빼고는 꾸준히 날 데리고 다녔다). 바야흐로 회사에 PC가 보급되고 모니터만 하릴없이 쳐다보던 직원들이 모여들었다. 복사, 복사 또 복사해줬다. 먼저 복사한 게 좋다고 직급으로 눌러 순서를 바꿔치기하는 일들도 생겨났다. 나는 맥과 PC를 동시에 사용했으나 맥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맥은 기본이 3.5인치 플로피다. 5.25인치 디스켓에서 3.5인치 고용량으로 바뀌었어도 '호환'이 안된다는 벽에 부딛치고 만 것이다. 프로그램도 저장매체도 호환성이 없으니 내 앞의 맥은 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맥이 끊기기 전 나는 맥을 새로운 주인에게 놓아주었다.


애플, 맥, 스티브잡스

 매킨토시를 만들어낸 애플사의 스티브잡스 서거소식을 들으니 놀라울 수 밖에 없다. 사과를 파먹은 벌레가 잡스의 몸으로 옮겨간 것은 아니겠지. 누구나 생의 유한성을 인정하지만 그 유한의 정점을 접하면 하염없이 발뿌리에 걸리는 돌이라도 걷어차고 싶어진다.

친구와 선후배 사이의 젊은이들이 사과밭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벌레먹은 사과를 골라내는 일이다. 그 벌레 먹은 사과를 곁에 두고 제2의 뉴턴이 되고자 새꿈을 펼치기로 한 이들. 애플사를 설립하고 컴터를 만들어냈다. 잡스가 오너였다. 디자인 월드라고 해야 하나, 모든 디자인들이 거의 컴터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그 컴터를 만들어낸 장본인. 매킨토시 시리즈에 이어 i 시리즈(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 아이튠즈 등)로 꾸준히 디자인+아이티+저널리즘의 선두로 세상을 이끈 이가 피안(彼岸)으로 자리를 옮긴단다.

잡스가 아니었으면 방송이나 신문, 잡지, 인터넷 등 모든 매체는 지금처럼 화려하게 아름답게 세상을 장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잡스는 갔지만 매체들은 잡스가 만든 옷(HW, SW)으로 그의 서거를 애도할 것이다. 보내는 마음을 절절히 표현해야 할 일은 이제 남은자의 몫이다.

 

애플사 홈페이지에는 그의 생몰연대를 표기했다  ⓒ app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