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 - 묵두

  묵두(먹통) : 네이버 포토에서...

시골생활은 쉽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잠오면 자고 산에 가고 싶으면 가고 일하기 싫으면 놀고...
모든 게 나의 것이고 내 하고자 하는대로 하면 됩니다.
 
시골생활, 쉽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배는고프지만 밥 하기 싫을 때도 있고 잠이 와도 연탄 갈 시각 기다려야 하고
산에 가더라도 돼지가 무섭고, 제 때에 할 일 안해 놓으면 겹겹이 밀려갑니다.
모든 게 내 것 같지만 어찌보면 나와의 힘든 겨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근간 시골생활을 하려고 도회에서 오신 분 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큰 뜻이 있어서 모인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일없어서 모인 것도 아닙니다.
텃세라 하기엔 묵은 감이 있지만 
아무튼 지역민과의 작은 알력을 해소해 보고자 모임을 갖게 된 것입니다.
 
모임의 이름을 정하는데...
'나눔'이 기본이고 그 앞에 지역적인 특징을 나타낼 수 있는 명칭을 붙여보기로 했습니다. 
 
이곳에는 마을의 어디에서고 우러러 보이는 산이 있습니다.
용산봉입니다. 해발 944m.
그래서 '용산나눔회'가 좋겠다 싶었습니다.
이름이야 붙여 부르기 나름이겠지만 서울의 용산이 떠 올라 좀 떨떠름합니다.

헌데 이지역 주민들은 눈 뜨면 보이는 그 산을
용산봉이라 하지 않고 묵두산이라 부르고 있었습니다.
묵두, 묵두...
사전을 찾아 보니 묵두는 먹통이고 그래서 묵두산은 먹통산어었습니다.
 
그 산이 먹통산이 된 이유는 자세히 모르겠습니다.
다만 일제치하때 개발되었다는 석탄 광산이 지금도 꺼먼 흑밭 잔해를 남기고 있으니
전엣분들이 먹통처럼 꺼먼 산으로 불렀음직 했겠거니 하고 고개를 끄덕일 뿐입니다.
 
우리는 문득 '먹통'에 공감하고 매료되었습니다.
전화가 불통이면 먹통이 됐다고 합니다.
속은 텅 비어 있으면서도 우직한 고집이 있으면 먹통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입니다.
우둔하고 멍청해 뵈는 사람도 먹통이라고 합니다.
대체로 꽉 막힌 경우, 또는 보통 이하의 경우에 앝잡이 투로 통용되는 말입니다.
목수나 석공들이 줄을 치는 데 쓰는 도구도 먹통입니다.

이렇듯 먹통은 그냥 꺼먼 먹물통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도구로서의 먹통은 지금도 철물점이나 공구상의 한켠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을 되돌리며 그것을 보는 순간 놀라움을 갖게 하는 추억의 상징물이기도 하지만 
팔리는 실용물로서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먹통이 현대화된 디지털 사회에서도 묵묵히,
그러면서 견고히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록 목수가 아니라도 줄잡이에는 최적의 도구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울퉁불퉁한 나무건 곧추선 벽이건 똑바른 선을 긋는 도구로서
그 이상의 것은 아직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묵두 - 먹물, 묵선, 탱탱한 긴장감, 팅 하는 가벼운 튕김음,
그것들이 만들어낸 까만 줄은 단순한 '선'이 아니라 '길'이 아닐까 하고 의미를 더해 봅니다.   
우리 집 어디엔가에도 먹통, 묵두는 있습니다.
언젠가 똑바른 길이 필요할 때면 그 묵두는 얼굴을 내밀 겠지요.
 
'묵두나눔회'
이름값을 해야 비로소 제 이름이 되겠지만
그러나 이름만으로 본다면 제법 그럴싸한 작명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