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모르고...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있고
난데없이 금은화가 피어났습니다.
 
전에도 그랬지만 그 땐 그냥 지나쳤는지 모르겠습니다.
근래엔 철을 잊고 피는 꽃들이 종종 보입니다.
철이란 계절이고 그 계절을 알면 철이 든건데
그렇다면 이 꽃들은 철이 없는 것일까요?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 운동장
개들이 좋아라 뛰놀며 뒹구는 모습이 눈에 들오면 시간을 잊습니다.
큰 개보다는 어린 강아지들입니다.
사람이 보인다면 대부분 어린이들입니다.
 
지긋지긋한 올 장마, 그리고 닭집
비가릴 자리를 충분히 마련해 주지 못해 안타까운데
비라야 아랑곳하지 않고 나돌아 다니며 펄쩍펄쩍 나르는 닭들이 있습니다.
어린 병아리는 아니지만 아직 덜 자란 닭들입니다.
 
철을 잊고 피어난 금은화를 하늘 배경으로 쳐다보는데
문득 철없는 꽃이 또 그리 예삐 보입니다.
동물들이 사리분별력이 없건, 식물들이 철을 잊든
내게 일어나는 작은 변화를 느끼면서 말입니다.
무철이로 사는 것도 괜찮다~ 고 생각할 때가 많아진 것입니다.
 
어린 동물들은 분별력이 없으므로 걱정이 없고
걱정이 없으므로 좋아라좋아라 날뛰는 것입니다.
세상을 깐난이(갓난아기)처럼 살면 두려울 것이 없고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울엄니의 말씀도 간간이 듣습니다.
 
전쟁터 피난길에 가장 무서운 것은 어린아기라 했습니다.
시도때도 없이 울음보를 터뜨리니까요.
도둑이 가장 무서워 하는 것은 할머니라 했습니다.
철없이 날 죽여라 하고 덤벼버리니까요.
전쟁이 없고 도둑이 없더라면 무서운 존재는 없었을 것입니다.
 
철없이 산다는 것...
괜찮은 것 같습니다.
아니, 그러고 싶습니다.